1910년 독일의 클라라 체트킨이 여성의 날을 국제 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최초로 제안했다.
그 이전인 1908년, 미국의 노동자 15만여 명이 뉴욕 거리를 가로질렀다.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웠던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과 여성 투표권 쟁취를 외쳤다. 그리고 1년 후, 미국 사회당(Socialist Party of America)이 이를 기념하여 국가 여성의 날(National Women’s Day)을 발표하고 뉴욕시 행진을 기획했다.
여성의 날을 국제 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은 클라라 체트킨이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차 세계 사회주의 여성회의에서 했다. 그 자리에 17개국에서 온 100명의 여성들이 있었고 만장일치로 그녀의 제안에 찬성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과 스위스에서 1911년에 처음 기념했다. 올해로 115번째 여성의 날을 맞는 셈이다.
클라라 체트킨이 세계 여성의 날을 처음 제안했을 때만 해도 특정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세계 여성의 날을 이날로 정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 제국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내세우며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이후 4일 만에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됐고, 여성들은 임시정부로부터 참정권을 얻어냈다. '빵과 평화' 시위가 시작된 날을 양력으로 계산한 것이 3월 8일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1857년과 1908년의 3월 8일에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여성의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의 지위향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1857년 뉴욕시의 섬유·의류 공장 여직공들이 작업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가두시위을 벌여, 진압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고, 1908년에는 수천 명의 미국 봉제산업 여종업원이 미성년자 노동금지와 여성참정권까지 포함한 요구조건을 내세워 시위를 벌였다.
그 후 여성의 날이 세계사에서 가장 무게감 있게 다가온 때는 역시 1917년 러시아에서였다.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페트로그라드를 행진한 푸틸로프 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을 시작으로 마침내 300년간 이어져 온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으로 가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날의 기원이 서구권이었지만, 미국 사회당에서 먼저 제정한 데다가 소련에서 국가적인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기념일로 취급받아 서구권에서 1930년대 이후로는 여성의 날이 묻혔으며, 한동안 여성의 날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기념하는 날 취급이었고, 실제로 동구권 붕괴 이후로 일부 동유럽 국가에서 여성의 날이 소련과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폐지되거나, 나중에서야 부활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여성주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의 날이 재발굴되었고, 이에 따라 서구권의 페미니스트들도 널리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5년, 유엔에서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